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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현대차를 만든 그 차, 쏘나타 역사⑥(마지막회)-NF의 성공


 1983년 이후 7번 변신을 거치며 지금은 당당히 주력 차종이 됐다. 덕분에 현대차의 글로벌 브랜드 이미지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1983년 'Y' 프로젝트로 시작된 쏘나타는 한국 자동차산업 근대사를 보여주는 차종이기도 하다. 작은 차에서 벗어나는 디딤돌이 쏘나타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본지는 쏘나타 역사를 통해 한국차의 현대사를 되돌아 봤다. <편집자>

 세타엔진 개발에 성공한 현대는 우선 NF쏘나타가 국산차의 제품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린 것으로 자부했다. 덕분에 대놓고 '캠리나 어코드를 겨냥했다'거나 '세계 최고수준의 품질을 확보했다'며 큰소리친다. 시판 첫 달인 9월 7,514가 팔린 후 극심한 내수침체에도 불구하고 월평균 8,000대 이상이 꾸준히 판매됐고, 출시 이후 7년 연속 국내 최다 판매차종에 오르기도 했다. 

 아울러 현대는 NF쏘나타를 통해 북미에서 본격적인 일본차와의 경쟁을 펼쳤다. 토요타 캠리, 혼다 어코드, 닛산 알티마 등과 한판 붙겠다는 계획으로 NF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실제 쏘나타 출시를 앞두고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캠리의 경쟁자'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쏘나타의 성공여부에 현대자동차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그만큼 현대로선 NF쏘나타의 성공여부가 중요했다. 


 그만큼 NF쏘나타에 들인 공은 이전과 비교할 수가 없었다. 개발을 시작할 때부터 세계 수준의 중형차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워낙 뚜렷했기 때문이다. '영원불멸의 명성(Neverending Fame)'이라는 뜻의 개발 코드명이 만들어진 것도 강한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돈도 아끼지 않았다. 26개월 동안 2,900억원의 비용을 쏟아 부었다. 

 쎄타 엔진은 순수 국산 엔진으로 최대 166마력(5,800rpm), 최대 토크 23㎏·m(4,250rpm)로 토요타 캠리(최대 159마력, 22.4㎏·m)보다 성능이 앞섰다. 연비도 2.4ℓ 기준으로 ℓ당 10.9㎞에 달했다. 당시 혼다 어코드(ℓ당 10.8㎞)보다 좋았다. 엔진개발에만 140명의 연구원이 4년 가까이 매달린 결과였다. 개발팀은 자동차의 가장 기본이 되는 엔진에서부터 일본차를 앞서야 한다는 정몽구 회장의 지시에 따라 모든 면에서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왔던 것이다.
 
 현대는 NF쏘나타에 운전석과 조수석 에어백은 물론 측면에도 커튼에어백을 설치해 미국 교통관리국에서 실시하는 신차 충돌 프로그램(NCAP)에서 최고 등급인 FSST(Five Star Safety Technology)를 획득했다. 국내에서도 건설교통부가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성능시험연구소에 의뢰해 국산차 5가지 차종을 충돌 실험 한 결과 NF쏘나타가 최고점수를 받았다. 편의품목으로는 전동 조정식 페달로 가속 및 브레이크 페달의 위치조정이 가능하고 텔레스코픽 스티어링 휠을 적용해 운전자 체형에 따라 최적의 운전자세를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이밖에 도난방지장치인 이모빌라이저, 위험알림 내장 무선도어잠금장치, 세이프티파워 윈도, 시큐리티 램프 등이 설치돼 운전 편의성을 높였다.

 디자인은 전면에서 후면까지 캐릭터라인을 안정감 있게 연결했으며 뒷좌석 문과 차체와의 분할 면을 직선으로 처리해 개성을 강조하면서도 편의성을 고려했다. 국내 최초로 누드 타입 방향지시등과 크롬이 아닌 스테인리스 재질의 웨이스트라인 몰딩을 적용한 것도 눈길을 끌었다. 

 내부도 오렌지톤 LED 조명으로 은은한 맛을 풍겼으며 오디오를 상단부에 배치, 조작이 편리하도록 했다. 도어 핸들 디자인도 세련된 감각으로 치장했다. 현대는 기존 에쿠스 고객에게 제공하던 '플래티넘 서비스'를 쏘나타 고객에게 제공하는 등 서비스 수준도 한 차원 높였다. '플래티넘 서비스'는 출고 뒤 3년, 6만㎞ 동안 필요한 횟수만큼 소모성 부품교환과 성능검사를 무료로 제공하는 차량관리 프로그램이다. 이는 현대자동차 서비스에 오랜 기간 몸 담았던 최고 경영자의 현장 체득에서 나온 실천 경영의 일환으로 평가받았다.

 NF쏘나타의 승부수는 수입차 공세에 맞서 국내 중형차시장을 지켜내고 해외시장에서 성공하는 것이었다. 특히 지난 2004년 11월부터 수출을 시작한 유럽지역의 성공적인 정착과 세계 최대 자동차시장인 북미지역에서의 성공여부가 중요했다. 연간 10만대 수준인 쏘나타의 미국 판매대수를 2007년까지 20만대 수준으로 끌어올려야만 성공이라는 게 현대측의 판단이었다. 나아가 세계시장에서 연간 30만대를 팔게 되면 쏘나타를 성공의 반열에 올린다는 게 내부의 목표였다. 


 실제 NF쏘나타는 미국 공장 가동 후 6개월여만에 전미 지역에서 팔린 176개 승용차 중 판매 7위를 기록하는 등 기염을 토했다. 미국 조사기관인 JD파워가 선정한 소비자신뢰도 1위 차종에도 올랐다. JD파워 조사에서 늘 하위권에 맴돌았던 한국차가 이제 상위권을 휩쓰는 시대가 된 것이다. 특히 자동차 전문가들은 NF쏘나타가 수년 내로 미국 중형차 시장에서 ‘국민차’ 개념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 언론 등에 따르면 쏘나타는 미국에서 지난 2004년 11월 한달간 1만4,216대가 팔렸다. 2004년 10월만 해도 9,676대의 판매로 17위에 머물렀지만 한달 만에 판매량이 무려 46.9%나 급증, 10계단이나 순위가 상승했다. 당시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승용차는 토요타 캠리로 2만9,707대가 팔렸고, 토요타 코롤라(2만3718대), 혼다 시빅(2만3695대), 혼다 어코드(2만3548대) 등 일본 업체가 1∼4위를 휩쓸었다. 이어 GM 산하인 시보레의 임팔라(2만357대)가 5위에 올랐고 닛산 알티마(1만5154대)가 쏘나타에 간발의 차로 앞서 6위를 차지했다. 쏘나타의 뒤를 이어 폰티악 G6(1만4175대), 시보레 코발트(1만3507대), 크라이슬러 300(1만2647대) 등이 톱10에 들었다. 그러나 지난 2005년 12월 쏘나타는 닛산 알티마를 뒤로 밀어내며 판매량 5위에 올랐다. 10여년 전 토크쇼의 놀림감이던 차가 당당히 미국 내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차종이 된 것이다.


 NF의 성공은 곧 YF쏘나타로 이어졌다. YF 또한 국내 최다 판매 차종에 이르렀음은 별 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그리고 YF는 최근 LF에게 바통을 넘겨주고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중이다.

 ▲연재를 마치며
 사실 1983년부터 시작된 쏘나타 역사는 대한민국 자동차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게 된 역사나 다름 없다. 쏘나타를 통해 한국차의 고급화가 진행됐고, 덕분에 해외 시장 개척에도 나서게 됐기 때문이다. 덕분에 한국 자동차산업은 지난해 완성차 생산만 465만대에 달했을 정도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이런 이유로 쏘나타의 재조명은 한국 자동차 산업에 있어 의미가 남다르다. 그저 하나의 자동차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차종이 된 지도 벌써 30년이 훌쩍 넘었다. 그리고 앞으로 가야할 길, 그리고 장년 나아가 노년이 될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은 결국 과거를 되돌아보는 데 있다. 잠시나마 되돌아 본 과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다면 그걸로도 만족일 것이다.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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